제1기이천역사문화대학_제10강 이천의문학활동 1부

제1기이천역사문화대학_제10강  이천의문학활동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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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1기이천역사문화대학_제10강 이천의문학활동 1부
일시 2006-06-14
작성자 이천시
제1기 역사문화대학
제10강 이천의 문학활동
민족문화작가회의 신배섭

오늘 제가 마지막 강의를 맡게 되었습니다. 시립박물관에서 저에게 의뢰한 강의주제는 이천의 문학활동이였는데요. 제가 지금까지 강좌를 하면서 40대에서 50대되는 분들을 상대로 문화에 대해 강의하면 사람이 없겠다라고 생각했는데 그저께 뵈었는데 충주는 50대에서 60대를 넘으신 분들이고 50여분이 참석을 하시고 거기다가 또 시장님께서 한번도 빠짐없이 나오신다 말씀을 해주셔서 상당히 부담이 되고 그리고 또 제가 고등학교 시절에 은사님들께서 또 여기 나와계십니다. 제가 있었는 교정의 교장분들도 나와계시고 심정적으로 떨리고 있는데 잘해야 될 것 같습니다. 그래야 은사님들께서도 잘키웠다라고 생각하실거고 전직 기관의 장으로 계신 분들께서도 좋아하실 텐데 재미있게 강의가 될 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주어진 시간이 90분인데요. 이천의 문학할동만 가지고 말하는 관점이 아주 없다고 과정을 해서 한국의 현대문학의 전반적인 흐름이 어떻게 진행되어 왔고 그속에서 이천의 문학활동은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말씀을 드리는 순서는 먼저 20세기 이전의 문학활동과 그다음에 이제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지금 2000년는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에 말씀드리기가 어렵지 않나 싶어서 1990년대까지 말씀을 드리고 그다음에 시간이 조금 남으면 못다하신 이야기가 있다고 하셔서 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이 3가지 정도 있어서 그것을 전하면서 강의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20세기 이전의 우리 문학활동을 크게 변화기 문학이라고 이름을 지을수가 있겠습니다. 이때는 1990년대에 1900년대에 들어와서 우리가 잘알고 있는 우리고장분이 혈의누라고 하는 그런 연재소설을 시작으로 신소설이 시작이 되는 때입니다. 그래서 이때의 신소설 작가로 대표적인 사람이 이백조, 최찬식, 안국선 이런사람들이 개화기에 문학을 분담했던 분이고 주로 신소설은 아무래도 그때는 조선이 끝나고 대한제국시대로 들어서면서 우선 신분제도의 타파를 주장하는 내용이 대부분 문학작품에 등장을 했습니다. 새로운 소설이라 생각을 하시면 됩니다. 그러한 주제를 다루고 있었습니다만 과거의 고소설의 유형이 아주 전형적입니다. 등장하는 인물이 선한 인물과 악한 인물의 대조로 나옵니다. 예를 들면 흥부전 같은 경우에 흥부는 착한사람 놀부는 악한 사람처럼 이러한 구조가 대표적인것이 구소설입니다. 이러한 구조는 계속 이어져있고 현대 소설에서는 태어나면서 죽을때까지 과정의 일대기를 그리는것이 일반적이였습니다. 그런데 신소설에서 이러한 일반적인 구조는 변하지 않고 다만 주제만 신분제도를 벗어나고 새로운교육제도를 도입을 하자 하는 그러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것이 특징이다라고 말씀드릴수가 있겠습니다. 이런식으로 요약을 해드리고 그러면 20세기 이전에 이천의 문학활동은 어떠하였는가. 20세기 이전의 문학활에 대한 기록은 아주 미약합니다.

우리이천에서는요. 대체적으로 남은것이 조선 성종때의 문집이 있습니다. 근현대이전에 있어서 이천에서 가장 가까운 인물의 문집이 되겠고 그다음에는 문집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시작품 기록되어있는것이 있는데 백사면 도긍리에 가면 6대정이 있습니다. 지난 일요일에 6개정이 새로 승의가 되고 있었습니다. 마을을 갈때마다 마음이 아팠는데 이제 깔끔하게 단장이 돼서 지역의 위상을 조금더 높이지 않나 생각하는데 중종때 6개정을 짓고 그곳에서 시를 쓰면서 있었던 김한국, 어명승, 강은, 오경 등 이런 선비들이 시연을 주고 받았다는 기록이 있고 당내 족보라던가 책을 통해서 보면 이천에 대한 그러한 이야기가 조금씩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이천에 대한 책은 현제까지로 알수있는 문집으로는 성종때와 중종때의 이러한 인물들에 의해 시작되지 않았나. 가까운 역사에서 찾을 수 있는 근거를 말씀드리겠고 그다음 주장의 신빙성은 명확하게 검증되지 않았지만 12년전에 이천의 현대문학의 원로이신 성결선생님께서 설봉문학회 창립문집에 다음과 같은 글을 실어주셨습니다. 이천 승조때 승실 권우 이명우 성규연 이장우 송승 송철 인증교 이찬욱 등이 중심이 되어 발간한 남천 구로회 시청이 있다고 주장을 하셨습니다. 근데 이 시청을 공개를 안 하셨어요 이 시청이 있다고만 말씀 하시고 글로만 쓰시고 그대신 공개가 안 돼서 남촌 구로회 시청이란게 과연 있는지 없는지 아직 확인은 안되고 있구요 거기어 인제 이것이 남천 구로회라고 하는 문인들의 모임이 있었다고 주장하신 글이 있습니다. 한 12년 전에 나온 글인데요 그래서 요때에 승조때에 남촌구로회라고 하는 문학 단체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아직까지는 그것이 고증이 확실하게 정리가 되지는 않은 상태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사실이기를 바랄뿐이죠 왜냐면 이천의 문학활동에 이것이 밝혀지면 아주 귀중한 자산이 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요건 나중에 해야될 과제가 아닌가 요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제 두 번째가 앞에서 말씀드린 개화기 시대인데요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다 시피 이 개화기에는 이천의 그 한국 근현대의 문학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는 국초 이지 선생을 들 수가 있습니다. 아 이분은 신소설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는데요 1862년 장호원에서 출생하신 분입니다. 그당시에는 음죽이었습니다. 지금은 이천이지만요 그래서 1916년 좌사 날자는 11월 22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때에 .. 있는데요 신경통으로 입원했다가 그 삼일만에 사망한 걸로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조금 뒤에가서 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문학사적인 측면을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사상에 대한것은 오늘 그 사상에 대한 말씀을 드리면 너무 심각하게 말씀ㅤㅇㅡㅀ 드리면은 가슴아파 하실 분도 있을지 모르겠구요 사상에 대한 측면은 간단히 말씀 드리고 문학에 대한 측면을 자세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문학사적인 측면에서는 한국 최초의 신소설가로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대단 한거죠 우리 이천의 한 작가인데 한국문화의 한 획을 긋는 최초의 작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요즘은 조금 있는 사람도 시계를 세우고 삼각촌을 관리하고 그러는데 지금 우리는 이지 선생에 대한 것은 유고지만 세워둔 상태입니다. 왜 그런지는 조금있다 말씀 드리고 옛날 소설과 근대 현대 소설로 이어지는 교량역활을 한 분으로 대단하게 문학에서는 평가를 받고있는 분입니다.

그런데 이제 이지의 문학작품을 보면 작품세계를 보면 전에한번 쓴 논문도 있지만은 크게 두가지로 볼 수 있겠습니다 처음으로는 허준호이라는 대표적 작품이 있구요, 문항봉 은세계 이 작품의 주제들은 계몽기의 주제에 나타난 개항기 신소설의 사상, 신교육의 사상 새로운 교육을 받아들이자 특히 이지의 교육사상에서는 일본의 교육사상을 받아들이자는 내뇽이많이 나옵니다. 개화기때는 청나라를 중심으로 하는 파가 있었고 일본의 문물을 받아들이자는 파가 있었는데 선생의 문학에서는 대부분 신교육 사상이라고 하는 일본의 교육사상을 받아들이는 것을 강조하구요 개화사상 새롭게 깨어나야 한다고 강조하는 작품들이 인제 혈의 누 문항봉 은세계 이런 작품들입니다.

그 다음에는 지금 귀의성 이건 귀신의 성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치약산 강원도를 배경으로 해서 전 근대적인 가부장적 사회를 벗어나자 이러면 좋은데 그런 가부장적 사회를 바탕으로한 가정소설을 쓴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홍길동전 같은 경우도 가정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중에서 혈의 누가 신소설을 대표하는 그런 소설로써 가장 주목을 받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인제 나머지 부분은 좀 생략을 하구요 그래서 이인직의 문학은 우리 문학사에서 대단히 높은 그런 평가를 받습니다. 그렇게 대단히 높은 평가를 받는데도 불구하고 이인직이 우리 이천에 문학의 연구라던가 이인직에 대한 사업이 이뤄지지 못하는 이유는 혈의 누 등에 나타나는 친일 의식과 반민족의식을 갖고있다는 이러한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를 몇 개 말씀 드리면요 혈의 누라고 하는 것은 피살자의 눈물 누자입니다. 제목 자체도 일본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누라고 하는 것이 일본 겁니다. 우리말로 한자로 한다면 과거에 따른 놈들이 똑같은 제목으로 썼다면 혈 누 이렇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혈의 누라는 일본식의 문체를 사용하고 또 하나는그 혈의 누를 보면 일본의 후리까나라는 것이 있습니다. 일본의 후리까나라는 것은 일본어를 써 놓고 그 옆에다가 그 읽는 것을 후리까나 라고 하는데 인제 혈의 누를 그런식으로 기록을 했다는 것이 있구요 그 다음에는 혈의 누 같은 경우에 보면은 거기에 인제 주인공 인물로 몽련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청나라 군의 군대를 맹렬히 비판합니다 그런데도 일본군의 만행은 눈감아 버려요 작가가요 청나라 군대의 만행만을 이 혈의 누에서 부각시키고 일본군의 만행은 거의 부각시키지 않고 있구요 그리고 몽련이가 고난에 빠지게 되는데 일본 군의관이 몽련이를 보호하고 구해줍니다. 그래서 일본인이 조선사람의 구원자다 라고 하는 의식을 은연중에 내포를 시키고 있구요 그 다음에는 구관서 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요 이 구관서 라는 인물은 작가의 분신입니다.

소설이라고 하는 것은 허구작품인데요 작가 자신과 비슷한 인물을 소설속에 만듭니다. 그 비슷한 인물이 소설속에 구화서라는 인물인데 이 구화서는 이 소설속에서 우리나라는 야만족이다라고 평가를 내립니다. 야만족이라고 멸시를 하고 그 다음에 일본과 합방을 해야 한다, 흔히 이야기 하는 대동아 합방을 주장합니다. 구화서라는 인물의 행적을 보면은 이인직 선생의 모습과 아주 닮아 있습니다. 추완 이광수 선생의 무정에서 형식이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형식이라는 인물은이광수 선생과 아주 흡사한 인물입니다. 똑같은 그런것처럼 혈의 누에서는 구화서 라는 인물이...그 다음에는 왜 이렇게 작품속에 이런 의식이 담겨있는가 하면은 작가가 태어나고 성장하는 과정이 작품속에 반영이 됩니다. 그게 아주 중요하거든요 이인직 선생은 1862년에 이천 장원에서 태어났는데 부친이 윤자기자 쓰는 분이고 전주 이씨로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근데 한산 이씬데요 5살 때 아버지를 잃고 이 전에 아버지가 재혼을 하는데 양모가 키우면서 그 양모도 잃고 18살 때 어머니마저 잃게 됩니다. 그러면서 거의 고아로 자라게 되는데 일제 강점기 시대에 그 그래서 1900년에 이인직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납니다. 그게 도쿄 정시대학입니다. 거기에 공화춘 교수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의 수재자가 됩니다. 근데 공화춘 교수는 나중에 1906년에 조선 총독부의 외사국장으로 취임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친일, 우리나라 대동아 합병, 합병이라는 단어를 일본이 사용하는데 저도 이 단어를 사용하면 안되겠죠 합병이라는 나라는 두 나라가 있어 합치다란 단어에요 합병이라는 단어는 지금 국사학자들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제가 학교를 다닐때만 해도 국사선생님이 한일합방 한일합방 이렇게 배웠는데 지금은 한일 합방이란 단어를 안 쓰구요 이건 일본에서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조선하고 일본이 합친다는 말을 안 쓰구요 지금은 국치라는 말을 씁니다 경술 국치. 그리고 경술국치에 이인직이 공화춘을 도와주기 위해서 그 이전에 옵니다. 경술국치 이전에 그리고 경술국치가 되면서 이인직은 일제로부터 자작호칭을 얻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이인직은 친일파다 이러는데 여기서 끝인게 아니고 1906년 되면은 이인직 선생님은 국민신보라는 곳의 편집국장이 됩니다. 국민신보는 뭐냐면 당시 친일파, 일신의 핵심적인 인물로 활약을 하구요 그리고 또 죽을 때도 일본식 장례를 치룹니다. 이러한 행적이 문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곱지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습니다. 곱지않은 시선으로.. 그러나 저는 좀 다르게 생각합니다. 그러한 친일의 일생을 살아왔다고 하더라도 이천에는 조금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조금 불리한 것은 버리구요 부각을 시켜서 이인직 문학이 갖는 한국 문학의 있어서의 긍정적 면을 자꾸 부각을 시키는 그러한 일을 해야합니다. 그러나 대학에서 문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이인직 연구는 잘 안해요. 잘못했다가는 맞으니요 그래서 주로 이천 출신인 분들이 이런 문학적인 성과를 자꾸 발견해서 이인직의 문학적인 면을 바꾸 부각을 시키고 그리고 친일에 대한것은 긍정을 하고 나도 인정을 하지만 문학의 세계는 대단하다는 것을인정을 하는 것이 좋지 않은가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앞으로 이인직에 대한 연구는 더 될 것으로 봅니다. 그런데 이인직 선생 이후로 우리 이천의 문학은 더 이상 찾아 볼 수 있는 근거자료는 현대까지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부분은 생략을 하겠습니다.

1920년대에 문학활동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 한국문학의 흐름입니다. 이때를 현대문학의 출발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1917년에 이광수의 무정이란 소설이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한국의 근대성 봉건주의 사상이 타파되고 현대적 사고를 갖는 인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1919년에 3.1운동이 일어나서 일제의 자본주의에 대해서 장황을 하고 새로운 자극을 받자라는 운동을 전개를 하지만 20년대 중반기로 가면 우리 문학은 지식인들이 3.1운동을 하면서 우리나라가 독립할 수 있을거야 하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가 3.1운동이 실해하면서 좌절을 하게됩니다. 지식인들은 조금 나약합니다. 민중들보다 강인하지 못해서 한번 좌절하면 아주 타락의 세계로 걸어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인 지식인의 전형인데 230년대에도 문학에 그런 모습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일부는 이 시기에 와서는 개인에 대한 탐구에 심취하게 됩니다. 자기중심적인 것에 빠져서 로맨틱한 작품이 많이 나오게 하구요 그리고 인제 독립을 해야겠다, 민족의 현실을 진단하고 우리 민족이 이대로 가면 안되겠다.. 라고 자각한 지식인들 중심으로는 카프라는 문화단체가 형성이 됩니다. 이사람들은 그만 사회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사회주의를 통해서 일제를 물리치려고 합니다. 사회주의는 해방이 되면서는 공산주의같은 사람들과 한 부류가 되는데요.. 일제강점기의 사회주의자는 독립운동가였습니다. 독립운동가의 대부분은 사회주의자였어요. 사회주의를 먼저 받아들인.. 이후에 자본주의 민주주의를 먼저 받아들이기 이전에 사회주의를 통해서 독립을 쟁취하려고 하는, 그런데 이사람들은 해방을 한 이후 대부분 월북을 하게 됩니다. 남한에는 미 군정이 통치하면서 사회주의가 살수없어서 월북을 하고 지금은 그런분들이 어떻게 생존해 계시는지 알기는 어렵습니다.

그 다음에 1930년대로 넘어가겠습니다. 20년대는이천의 문학에 대한 흐름이 거의 없어서 현대의 흐름에 대한 것만 설명을 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서 1930년대로 가면서 부터는 활발한 문학활동이 전개가 되는데요 그러면서 주로인제 소설도 많이 있지만 시에 대해서 간단히 말씀드리면 시 문학파가 생깁니다. 순수문학을 하는 분들이에요 그 현실에 4대한것은 작품에 반영하지 않고 현실의 작품에 대한것을 많이 반영을 하는 귀영남 박영철 신석정 이런분들 그 다음에 시 문학파가 너무 순수쪽으로 가다보니 반대붐이 또 있었습니다. 목적의식을 내세우는 20년부터 계속이어져 내려오는 계곡문학이었습니다. 그것이 인제 1930년대 32년에 가면 일제가 사회주의 하는 놈들 우리가 대한제국을 통치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해서 강제로 감옥에 가둡니다. 그러면서 이 그룹들이 30년대 해체가 되고 그리고 모더니즘 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잘 이해가 안되실 겁니다. 현대문학 설명할 때는요. 이 부분은 대개 감각적이고 시각,촉각, 후각,이런식의 시를 쓰는것을 모더니즘이라고 합니다 요런것이 대부분 많이 나타나구요.

그리고 인제 우리나라에서 가장 드물게 나타난 것이 초현실 주의 작가인 이상입니다. 이상은 현대의 현재까지 이상의 작품을 완벽하게 해독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 이상은 규정이 안됐구요. 혹은 뭐 말씀드린 것 같은 부분들 그리고 30년대 후반에 가면 개인중심이었습니다. 국가적인 운영을 벗어던지고 자기 중심적이었습니다. 그러니 지식인이 반성을 하는 거에요. 내가 중심이 아니고 나라가 먼저지 않느냐. 그러면서 두가지 그룹으로 작가가 나눠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30년대 게속 활동해 왔던 시문학파와 생명파 서정주 이런 분들이 등장하고요 청록파 박목월 박두진 조지훈 이런분들 자연을 소재로 하면서 주재를 삼는 그런 작가들이 계속이어지면서 최근에 가장 각광받는 고등학교 애들은 인제 이 부분이 수능시험에 많이 나오는건데요 뿌리뽑힌 성인의 아픈 삶을 노래하는 그 이용하라고 하느 시인이 있구요 백석이라고 하는 두 사람의 시인이 있는데 이 사람들의 시는 주로 이런겁니다. 1930년대가 되면 이때가 가장 일제의 극심할 때입니다. 언론 탄압하고 신문폐간 시키고 이렇게 하다 다시 문화정책이라고 해서 신문하게 하고 잡지하게 하고 이럴 때 동양척식 주식회사라고 하면서 인제 땅을 처음에는 다 사들이고 다시 소작인들에게 분할을 시켜줍니다. 근데 이때 일제가 다시 전쟁을 일으키면서 서민들의 모든 집기 재산 소작세 이런것을 마구 모으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되면서 농촌에 사는 농민들은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는 것이죠. 소작민 보다도 수확보다도...이거는 뭐 집을 팔아도 갚을 수도 없는 상황에 오게되고 이제는 사채를 고리대금을 하게 되면서 점점 피폐한 생활을 하게 되는 때가 1930년대입니다.

그러니 할 수 있는게 뭐가 있습니까. 야반도주죠 집과 땅을 버리고 밤에 이끌고 만주로 이주를 합니다. 만주에 가면 누구든지 땅을 개척하고 이럴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러면서 이주하면서 그런 삶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의 체험이 작품속에 반영된 그런 작품들이 많이 발표가 되었습니다. 근데 이게 제가 학교에 다닐때는 근대에 대해 배운적이 없습니다. 제가 대학을 다니면서 배우게 ㅤㄷㅚㅆ어요. (지금은) 고등학생들 중학생들도 배웁니다. 왜냐면 이분들이 월북작가입니다. 제가 고등학교에 다닐때는 이분들 빨갱이다 하는 시절인데 지금 중학교 고등학교 애들이 이 사람들 모르면 학교를 못다닌 애들이 되어버려서 문학에 있어서도 격세지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 다음인제 40년대 문학에 가면요 이때도 역시 개인과 민족이라는 주제로 말씀드릴 수 있는데요 40년대 대표적 작가는 윤동주와 이육사입니다. 우리가 흔히 이분들을 저항시인이라고 합니다. 두 사람다 젊은 나이에 죽었죠.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가 2월에 귀국길에 오릅니다. 일본에서 유학생활 당시에 쓴 작품들이 사상적으로 의심을 받습니다. 그래서 배를 타기전에 일본 헌병에게 붙잡혀서 후쿠오카 형무소에 갖히게 됩니다. 그런데 후쿠오카 형무소가 마루타 형무소입니다. 그래서 조선족들을 데리고 일본 만주에서도 했습니다. 그래서 생체실험의 희생자로 사망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연세대학에는 동상이 세워져 있구요. 그리고 이육사 선생님은 본명이 아닙니다. 이건 독립운동 용입니다. 그래서 독립 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가게 ㅤㄷㅚㅆ는데요 죄수 번호가 입니다. 그래서 그걸 영원히 잊지 않겠다 해서 자신의 이름을 216 아니 264 해서 자신의 이름을 이육사라고 하게 됩니다. 절정 광야 아주 절망적 상황에서도 당당하고 ㅤㄲㅜㄷㅤㄲㅜㄷ하게 맞서는 정신을 가지고 있는 작가입니다. 지식인의 전형입니다.

아주 그 20년대 30년대 지식인들은 행동하지 않는 지식인이라고 평가를 내립니다. 국가는 외면하고 자기자신의 내면탐구와 낭만 퇴폐 술마시고 담배피고 이런것에 빠져있는 사람들은 지식인이라고 평가를 내리진 않습니다. 지식인들은 많이 아는 만큼 행동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지식인의 전형이라고 평가내리는 사람이 이육사와 윤동주입니다. 요 시기에 우리이천에서도 훌륭한 분이 우리 문학사에 기록이 되어있으면 좋은데 이때까지도 우린 기록을 찾아 볼 수가없었습니다.

그리고 1950년대의 우리 문학을 전후문학이라고 합니다. 전후문학이라는 것은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소재와 이야기로 삼고 있는 것이 전후문학이라고 하는데요 소재는 상당히 많지만 시만 간단히 말씀드리면 이 전쟁후의 혼란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순수문학을 하고 있는 분들이 계속 작품을 씁니다. 이광 서정주 박목월 김광석 박지선 이런 분들이 순수문학의 세계를 계속 이어오고 있습니다. 나중에 70년대에 가면 왜 순수문학이 계속 이어져 내려오는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반면에 이제 그 40년대의 저항시의 계통을 잇는 그러한 작가 분들이 계속 이어집니다. 현실을 작품속에 적극적으로 받아오는 것 전쟁의 황폐함 잔인함 불안감 이런것을 작품에 담아낸 동인들이 후반기 동인들인데요 그 사람들이 박인환 김수영 백남수 이런 시인들이 후기에 있는 분들입니다.

이 외에 정안모 선생님도 기독교 세계관을 보여주는 김연수 선생님 시 속에 기독교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기도가 나오고...그리고 21세기의 문학하는 사람들이 한반도의 그 정세나 세계 정세가 대립과 갈등 이런것인데요 앞으로는 모든 것이 화해와 관용 이런것이 등장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전쟁때 남북한이 화해하고 서로 용서하며 적군임에도 불구하고 적군의 묘지를 만들어 주고 이러는 그러는 것이 시속에 등장합니다. 구상선생의 적군의 묘지 앞에서 이런...그래서 그 역사라고 하는 것은 돌고돈다고 합니다. 돌고돈다고 하는 것은 문학이나 사학에서는 회계된 변증법이라고 하는데요 계속 돌고돕니다. 그래서 흔히 이야기 하면 와이셔츠 타이를 보면 과거에는 되게넓었다가 점점 좁아지니까 버리셨다간 후회합니다. 오년뒤에는 또 넓어집니다. 또 옛날것 찾게 되고 그런 것 처럼 세상은 역사가 변한다고 주장하는게 변증법인데요. 오늘날에 또 다시 전쟁 후에이러한 주제를 가진 작품이 많이 있었습니다. 작가들의 화두가화합 관용 화해 이런 것 쪽으로 현재 진행중에 있습니다.